제1차 통화조치
한국전쟁의 여파로 산업활동이 크게 위축되고 물가가 급등하는 등 경제가 큰 혼란에 빠짐에 따라 이를 타개하기 위하여 1953년 2월 15일 화폐단위를 ‘원(圓)’에서 ‘환(圜)’으로 변경하고 100대 1로 절하(100圓 → 1圜)하는 긴급통화조치를 단행하였다. 1953년 2월 17일부터 ‘圓’표시 한국은행권의 유통을 중지시켰으며 그 동안 한국은행권과 함께 저액면용으로 통용되어 오던 7종류 조선은행권(10圓, 5圓, 1圓, 50錢, 20錢, 10錢 및 5錢)과 일본정부의 소액보조화폐(1錢주화)의 유통도 전면 중지하고 환(圜) 표시 한국은행권만을 유일한 법화로 인정함으로써 우리나라 화폐의 완전한 독자성이 확보되었다.
쉽게 이해하기
제1차 통화조치는 한국전쟁 중이던 1953년 2월, 돈의 단위를 '원'에서 '환'으로 바꾸고 숫자를 100분의 1로 줄인 긴급 화폐개혁입니다. 동시에 일제강점기부터 써 오던 옛 돈을 모두 거둬들여, 한국은행이 찍은 돈만 쓰게 만든 조치이기도 합니다.
배경은 전쟁이 부른 극심한 물가 불안입니다. 공장과 농토가 망가져 물건은 모자란데 전쟁을 치르느라 돈은 계속 풀리니, 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이 빠르게 줄었습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정부는 화폐 체계를 한꺼번에 새로 짜는 길을 택했습니다.
100대 1 절하는 가격표의 0을 두 개 지우는 일입니다. 1만 원짜리 물건은 100환이 되고 월급과 예금도 똑같이 100분의 1로 바뀌므로, 단위를 바꾸는 일 자체로는 사람들의 실제 구매력이 늘거나 줄지 않습니다. 치솟은 물가로 커질 대로 커진 숫자를 다루기 쉽게 정리하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더 오래 남은 의미는 화폐의 독립입니다. 한국은행이 1950년에 세워진 뒤에도 잔돈으로는 식민지 시기 조선은행이 발행한 지폐와 일본 정부의 동전이 섞여 쓰였습니다. 이 조치로 그런 돈이 모두 효력을 잃고, 법이 지급수단으로 인정하는 돈(법화)은 우리 중앙은행이 발행한 환 표시 지폐 하나로 정리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1953년 2월 15일 이전에 쌀 한 말 값이 5,000원이었다면, 조치 뒤에는 같은 쌀이 50환으로 표시됩니다. 한 달 월급 3만 원도 300환으로 바뀌므로, 월급으로 살 수 있는 쌀이 여섯 말이라는 관계는 단위만 바꿔서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반면 잔돈으로 쓰던 조선은행 50전 지폐는 2월 17일부터 더는 물건값으로 낼 수 없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