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튼우즈체제

브레튼우즈체제는 1944년 7월 미국의 뉴햄프셔주 브레튼우즈에서 44개 연합국 대표들이 새로운 국제통화제도 구축을 위해 체결한 협정에 따라 발족한 국제통화체제를 말한다. 이 협정을 체결하게 된 배경은 1930년대 대공황의 여파로 인한 금본위제도 붕괴, 무역 규제 확대, 환율 불안정에 이어 1940년대 국제유동성 부족, 외환규제 확산 등으로 국제통화질서가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브레튼우즈체제는 국제통화제도의 본질적인 기능인 유동성 공급과 국제수지 조정 메커니즘을 미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하는 금환본위제도와 조정가능 고정환율제도를 통해서 해결하고자 하였다. 즉 각국은 달러를 대외준비자산으로 보유하고 미국은 다른 나라가 보유한 달러에 대해 금태환을 보장하며, 각국의 고정환율에 조정이 필요한 경우 국제통화기금(IMF)과 협의하여 변경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설립된 국제기구가 IMF와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이다. 1960년대 들어 국제유동성 수준이 미국의 국제수지 상태에 따라 결정되고 환율 변경을 통한 불균형 개선이 쉽지 않은 등의 구조적인 문제가 대두되는 가운데 1971년 미국이 달러화의 금태환을 정지하고 뒤이어 선진국들이 변동환율제도로 이행함에 따라 브레튼우즈체제는 사실상 붕괴되었다.

쉽게 이해하기

브레튼우즈체제는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연합국들이 합의한, 미국 달러를 한가운데 두고 다른 나라 통화를 달러에 고정해 묶은 국제 돈 거래의 규칙입니다. 1971년 미국이 달러를 금으로 바꿔 주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사실상 막을 내렸습니다.

이런 규칙이 필요했던 것은 1930년대의 경험 때문입니다. 대공황 뒤 금과 통화를 묶던 옛 질서가 무너지자, 나라마다 수출을 늘리려고 제 통화 가치를 앞다퉈 떨어뜨리고 수입을 막았습니다. 환율이 들쭉날쭉하고 무역 장벽이 높아지자 세계 교역이 쪼그라들었고, 전후에는 다시는 그러지 말자는 공감대가 생겼습니다.

작동 방식은 두 겹의 고정입니다. 미국은 금 1온스를 35달러에 바꿔 주겠다고 약속하고, 다른 나라들은 자국 통화를 달러에 일정한 값으로 묶었습니다. 그러면 각국 통화가 달러를 거쳐 간접적으로 금과 이어지므로, 나라들은 금 대신 달러를 쌓아 두고 무역 대금을 치를 수 있었습니다. 환율은 고정이되, 한 나라의 수출입이 오래 크게 어긋나면 IMF와 의논해 고정값을 옮길 수 있게 한 점이 숨통이었습니다. 이때 만든 IMF와 세계은행(IBRD)은 체제가 끝난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무너진 원인은 구조 자체에 있었습니다. 세계에 달러가 돌려면 미국이 해외로 달러를 내보내야, 곧 국제수지 적자를 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적자가 쌓여 해외의 달러가 미국이 가진 금보다 훨씬 많아지자, 약속대로 다 바꿔 줄 수 있느냐는 의심이 커졌습니다. 반대로 적자를 줄이면 세계가 쓸 달러가 모자랐습니다. 고정값을 바꾸는 일도 나라마다 정치적 부담이 커서 잘 일어나지 않았고, 결국 금 교환이 멈춘 뒤 주요국은 시장에서 환율이 정해지는 방식으로 넘어갔습니다.

예를 들면

브레튼우즈체제 아래에서 1달러는 360엔으로 묶여 있었습니다. 일본 수출기업이 미국에 물건을 팔고 3,500만 달러를 벌어 오면 이 돈은 126억 엔과 같았고, 일본 중앙은행이 이 달러를 모아 미국 정부에 내밀면 1온스당 35달러로 금 100만 온스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1971년 금 교환이 멈추자 이 마지막 단계가 끊겼고, 1달러 308엔으로 한 차례 다시 묶였다가 1973년부터 엔화 값은 시장에서 매일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든 사례이며, 실제 사안은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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